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마 이사금 (문단 편집) == 생애 == 신라 초기는 아직 장자 계승이 확정되지도 않아 [[왕위]] 순서가 복잡한데 박지마는 아버지 파사 이사금의 [[태자]]로서 비교적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박지마가 애례부인 김씨를 얻은 일화가 고대의 국왕치고는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 있다. 그가 아직 태자이던 시절, 아버지 파사 이사금과 호숫가에서 [[사냥]]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한기부에 들렀는데 허루(許婁)라는 사람이 [[잔치]]를 열어 대접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허루는 어린 딸에게 나와서 [[춤]]을 추게 했는데 파사 이사금과 태자 지마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김(성씨)|김씨]] 성을 가진 마제(摩帝)라는 사람도 딸을 춤추게 했는데 태자 박지마는 오히려 마제의 딸을 마음에 들어했고, 반면 허루의 딸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랫사람의 딸이 오히려 태자의 관심을 받자 허루는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걸 뒤에서 보던 파사 이사금이 마제의 딸은 태자의 비로 삼고, 마제의 상급자인 허루는 멋진 연회를 열어준 공으로 대신 더 높은 [[관직]]을 줘서 위로했다는 것이다. 재위 기간 동안에는 즉위하자마자 일단 [[백제]]에는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고, 주로 덤비는 [[가야]]를 공격했다. 먼저 115년 2월 가야가 남쪽 변방에 쳐들어와 [[노략질]]하자 그 보복으로 115년 7월 친히 [[병력]]을 이끌고 황산하[* 지금의 [[낙동강]] 하류,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물금]]으로 추정.]를 건너 가야를 공격했지만 숲에서 가야군 [[복병]]을 만나 몇 겹으로 포위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년 뒤인 116년 8월에는 부대를 둘로 나눠 10,000명 이상을 동원해 다시 친정했지만 이번에는 가야가 [[성문(건축)|성문]]을 닫고 [[우주방어]]를 하는 통에 [[장마]]까지 와서 별 소득없이 군사를 되돌리기도 했다. [[동해]]를 건너오는 왜군의 침략에는 주로 당하는 편이었다. 121년 4월에 [[왜]]가 동쪽 변경을 침략했고, 122년 4월에는 왜가 쳐들어온다고 하는 [[소문]]에 [[경주시|서라벌]] 사람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튀어버려서 왕이 일일이 사람을 보내 헛소문이라고 내려오라고 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123년 3월에 결국 왜와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왜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왜에서 [[히미코]]가 [[여왕]]에 올랐을 때 신라는 다다음 왕인 [[아달라 이사금]](제8대)이었으니 [[중국]] 측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참고하면 지마 이사금 때가 대강 히미코가 등장하기 전에 있었다는 일본 열도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내부 사정이 복잡해 [[대한해협]] 건너편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왜국과 화해한 후에는 그동안 별 일이 없었던 북방의 [[말갈]]족이 자주 쳐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 말갈은 훗날 [[여진족]],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퉁구스]]계 부족이 아니라, 실제로는 지금의 [[강원도]] 지역에 분포하던 [[동예]] 계통 집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말갈]] 문서 참조. 아무튼 이들이 125년 1월과 7월에 두 번 쳐들어와 [[약탈]]을 하자 백제 왕에게 지원군을 요청해 이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렇게 백제와는 사이가 좋았던 편이었다. 134년 8월에 죽었는데 자식으로는 딸인 [[아달라 이사금]]의 왕비 내례부인(內禮夫人)만 있었다. 그래서 지마 이사금의 큰아버지인 [[일성 이사금]]이 다음 군주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는 일성 이사금이 지마 이사금의 큰아버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성 이사금]] 문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나이 차이 문제로 삼촌이 아니라 실은 중간에 한 사람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자]]들은 본다.]고 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족보]]》에는 지마 이사금에게 [[아들]]과 [[손자]]가 있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손자로 나오는 [[박아도]]는 그와 관계된 설들이 복잡하여(그 중 하나가 일성 이사금의 아버지라는 것) 문제가 있다. 어쨌든 역사학계에서는 지마 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름]] 말고는 특이한 점이 없고, [[천재지변]]이 있었다. [[황충(곤충)|황충]], [[서리(날씨)|서리]], [[우박]], [[홍수]], [[가뭄]], [[전염병]], [[화재]], [[지진]]이 모두 하나씩 골고루 발생했다. 그 외에 [[일식]]과 [[혜성]]의 기록도 몇 차례 있다. 참고로 지금이야 단순한 [[천문]] 현상인 것을 다들 알지만 전근대 시대에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일식과 혜성이 별로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겨졌다.[* 서양에서 이런 [[미신]]이 깨진 것도 [[16세기]]나 되어서였다. [[에드먼드 핼리]] 문서 참조.] 참고 자료: [[http://ko.wikipedia.org/wiki/%EC%A7%80%EB%A7%88_%EC%9D%B4%EC%82%AC%EA%B8%88|위키백과]], [[https://db.history.go.kr/id/sg_001r_0070_0010|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